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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나는 르네에게 내 의문을 제기했다. 왜 우리 사회에서는 가장 의미 없는 것들을 판매할 때 가장 큰 돈이 생기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일까? 산업 혁명의 핵심에 자리 잡았던, 능률과 생산성의 극적 향상이 왜 샴푸나 콘돔, 오븐용 장갑이나 여성 속옷처럼 평범한 물질적 상품을 공급하는 일을 넘어 확대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일까? 

 

"모든 낭비 가운데 당신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낭비는 노동의 낭비다. 아침에 낙농장에 ㅡㄹ어선 순간 막내아들이 고양이와 함께 놀다가 크림을 바닥에 다 쏟는 바람에 고양이가 바닥에 묻는 크림을 핥고 있느 ㄴ모습을 보게 된다면, 당신은 아이를 꾸짖을 것이고, 우유를 낭비한 것을 아쉽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우유가 담긴 나무 사발이 아니라 인간 생명이 담긴 황금 사발이 있다면, 당신은 그 황금 사발을 신에서 샘가에서 깨도록 맡겨두는 대신 당신이 나서서 흙 속에서 부수고 인간의 피는 바닥에 쏟아 악마가 핥게 할 것이다.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고 하면서! 당신은 아마 '노동을 낭비하는 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니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가? 나는 이보다 인간을 더 철저하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묻고 싶다."

 

 

로켓이 솟아올랐다. 모두 입을 떡 벌렸다. 놀라서 내뱉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아 소리, 그 모호하고 원시적인 소리뿐이었따. 한순간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을 잊고 있었다. 우리의 교육, 예절, 아이러니에 대한 느낌도 다 잊었다. 그저 남쪽 하늘을 가로지르며 치솟는 하얗고 가느다란 창 하나를 눈으로 따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빛도 있었다. 폭탄 제조자가 ㅁ나들어낼 수 있는 색 가운데 가장 짙은 주황색이었따. 로켓이 창공에서 거대하게 타오르는 전구가 되자, 우리는 마치 대낮처럼 해변, 쿠루 시, 정글, 우주 센터 건물, 옆에 있는 구경꾼들의 놀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예기치 않게 우울한 기분에 젖어들었따. 아리안 론처 발사의 배경을 이루는 성취들 가운데 실제로 우리의 일상적 경험으로까지 분명하게 흘러들어올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삶의 많은 부분은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내면의 혹독함, 중력, 우울에 계속 시달리며 이어져나갈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사실 동굴에 살던 우리 조상들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따. 우리 몸은 쇠약해질 것이고, 우리의 계획은 뜻한바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잔인성, 욕정, 어리석음에 시달릴 것이다. 위대한 기계들이 보여준 속도, 우아함, 위엄, 지능과 연결을 회복할 만한 처지에 놓이는 일은 아주 드물 것이다.

나는 근대를 살아가려면 고통스러운 심리적 적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았다. 과학이 제공하는 잠재력을 존중하면서도 그 혜택이 좁은 틀 안에 갇혀 곤혹스러울 정도로 제한적일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엔지니어와 기술자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 전문가들은 밤하늘이나 산과 비교할 때 존경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어울리지도 않고 왠지 곤혹스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과학 이전의 시대에는 아무리 부족한 것이 많다 하더라도 어쨌든 인간이 이룬 모든 성취는 우주의 장대함에 비추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계 장치에서는 그들보다 축복을 받았을지 몰라도 세계관에서는 그들보다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똑똑하고, 정확하고, 맹목적이고, 도덕적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동료 인간들 외에는 달리 딱히 숭배할 대상이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선망, 불안, 오만의 느낌들과 씨름을 하게 되었다.

 

발을 멈추고 나무 옆을 달리는 담장에 기대 쉬다가,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무의 뭔가가 자신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외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 일을 제대로만 해내면 그의 인생도 막연하기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구원을 받고, 그의 곤경들도 승화될 것 같았따.

일을 하다가 깜빡 잊고 끼니를 거르는 것은 테이러에게 드문 일이 아니다. 일을 할 때 그는 사각형의 캔버스를 움직이는 하나의 정신, 하나의 손에 지나지 않는다. 물감을 섞고, 그 색깔을 세상과 비교하여 확인하고, 그ㅓㅅ을 격자의 할당된 장소에 정착시키는 작업을 하다 보면 과거와 미래는 사라진다.

 

사실 여러 해의 노동의 결과를 사방의 벽에 걸어놓고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직업은 만힞 않다. 우리의 모든 지능과 감수성을 한 장소에 모아둘 기회는 더군다나 찾아보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노력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물리적 상관물을 찾지 못한다. 우리는 거대하지만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집단적인 기획들 속에서 희석되고, 그러다 보면 작년에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더 깊은 수준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간 것이고, 도대체 무엇이 된 것인지 궁금해하다가 결국 퇴직 기념 파티 같은 분위기에 젖어 우리의 사라진 에너지들을 바라보게 된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어떤 것을 꺠우치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바람 없는 뜨거운 여름 오후 떡갈나무의 서늘한 그림자. 초가을 잎의 황금빛을 띤 갈색. 기차에서 스쳐가며 본, 묵직한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윤곽으로만 서 있는 헐벗은 나무의 어떤 금욕적 슬픔. 동시에 그림은 우리 정신의 잊고 있던 층면들과 신비하게 결합될 수 있다.

 

 

수전은 그림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부나 지위를 자랑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녀 자신에게도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어떤 의미에서는, 남들에게 자신이 이 그림과 약간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전시회가 끝난다.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테일러는 변변치 못한 배관공의 1년 수입 정도를 벌어들였다. 평소의 우리 모습보다 더 우아하고 지적인 대상을 창조하기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는 인간 본성의 비실용적 측면을 보는 듯하다.

 

 

나는 감명을 받았따. 그것과 비교하면 언어는 무척이나 궁핍해 보였기 떄문이다. 일상 언어에서는 전기 네트워크와 관련된 것보다 훨씬 더 기본적인 의미를 전달할 때도 엄청나게 ㅁ낳은 단어들을 불안정하게 잔뜩 쌓아올려야 했다.  

 

 

모두 신문을 읽고 있다. 물론 새로운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잠으로 인해 내성적으로 되어버린 마음을 살살  달래 밖으로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신문을 본다는 것은 소라고둥을 귀에 대고 인류의 고함에 압도당할 각오를 하는 것이다.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자유의 끝이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의심과 집념과 변덕스러운 욕망의 끝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회계사의 만 가지 가능성도 이제 마음에 드는 몇 가지로 줄어들었따. 그녀에게는 사람을 만나면 나누어주는 명함이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가 우연적인 우주에 나타났다가 곧 사라질 덧없는 의식 한 조각이 아니라 '비즈니스 유닛 시니어 매니저'라고 말해준다. 아니, 좀 더 의미있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녀 자신에게 그 사실을 일깨워준다. 동료들이 그 직책을 근거로 나에 관하여 가정하는 것들이 나를 제어해주는 덕분에 새벽의 외로움 속에서도 과거에는 가능했지만 이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게 되니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보험 중개 회사에서 나온 팀과 만날 약속은 30분 뒤이기 때문에 그녀는 카페테리아에서 머핀과 커피를 살 시간이 있다. 사무실에서 하루가 시작되면 풀잎에 막처럼 덮인 이슬이 증발하듯이 노스텔지어가 말라버린다. 이 인생은 신비하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감동적이거나, 혼란스럽거나, 우울하지 않다. 현실적인 행동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무대다.

 

 

실제로 사회가 발전할수록 파괴된 것들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는 것 같아요. 거기에서 그들 자신의 성취의 덧없음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리고 구원을 얻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폐허는 권력과 지위, 소란과 명성을 향한 우리의 욕망과 정면으로 충돌하지요. 폐허는 있는 힘을 다해 미친 듯이 부를 추구하는 우리의 풍선 같은 어리석음에 구멍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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