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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에게 사랑을 묻다] 기시미 이치로

 

일류기업에 다녀도 그만두고 싶을 수가 있고 계속 다니고 싶어도 회사 자체가 도산할 수도 있다.

또 젊지만 병에 걸려서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서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것은 다름아니라 사랑하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제 사랑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어떤 일도 그 결심을 번복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역사는 우리가 정말 자유로워질 때, 우리가 주인도 노예도 아니고, 주인 노예도, 노예 주인도 아닐 때

비로소 종언을 고할 것이다.


헤겔에 의하면 "죽음 앞에서 겁을 먹고 파멸로부터 온전히 스스로를 보존하는"

벌거벗은 삶이 아니라, "죽음을 감내하고 죽음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해가는"삶이다.


절대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을 도외시하는 긍정성"이 아니다.

정신은 오히려 "부정적인 것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 곁에 "머물러" 있는다.

정신은 절대적이다. 정신은 극단적인 데까지,

극도의 부정성에 이르기까지 과감하게 들어가 이를 자기 안에 끌어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극단적인 것과 극도의 부정성을 자기 안에 품음으로써 완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자신은 세계의 중심에 있고, 자신의 것은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받는 것만을 기대하는 사람은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물론,

사랑과 결혼에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활동이나 과정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그저 경험될 뿐이다.

그러한 까닭에 사랑은 소유할 수 없으며 경험할 수 있을 뿐이다.

그 경험은 말하자면 부단히 흐르는 것이며, 시시각각 변한다.

한 번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성취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실시간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사랑을 부단히 갱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노력은 상대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라서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 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살아가는 기쁨이 되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고 깨닫는 순간,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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