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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 하루키, 홍은주 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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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 하루키 -


전화를 끊고 세면대로 가서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내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나 자신의 얼굴을 정면에서 똑바로 쳐다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거울에 비친 나는 그저 물리적인 반사일 뿐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 곳에 비친 내 얼굴은 어디선가 둘로 갈라져 덜어져나간 내 가상의 분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기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였다.

물리적인 반사조차 아니었다.




- <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 하루키 -


그러고 보니 내게는 이상하게 어릴 적부터 썩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비밀을 털어놓는 일이 잦았다.

어쩌면 나는 타인의 비밀을 끌어내는 특별한 자질 같은 것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남의 말을 잘 들어줄 사람처럼 보이는지도.

어쨌거나 그로 인해 득을 본 기억은 한 번도 없다.

사람들은 자기 비밀을 털어놓은 후 반드시 그 사실을 후회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이야." 기사단장이 귓전에 속삭였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두게나. 판단은 나중에 하면 돼."

두 눈 똑바로 뜨고 있어도 놓치는 게 많을 것 같은데. 나는 생각했다.




- <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 하루키 -


우리는 손에 쥐고 있는 것, 혹은 장차 손에 넣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잃어버린 것, 지금은 손에 없는 것을 동력 삼아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행위를 내가 납득할 수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명백히 내 이해력의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동기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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